10월 12일 월요일, 싱가포르의 한 패널 토론에 브로드컴(Broadcom) CEO 혹 탄(Hock Tan)이 나와서 한 말이 이틀째 시장을 흔들고 있습니다. "많은 투자자들이 자기가 뭘 투자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극단적인 기대만 가지고 들어왔다가 결국 카지노에서 도박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반도체 업계에서 지금 가장 많은 돈을 벌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 AI 투자 붐을 도박판에 비유했다는 사실 자체가 역설적이라, 그냥 흘려듣기 어려운 발언이었습니다.

브로드컴 CEO 혹 탄
이미지: Wikimedia Commons

혹 탄은 누구인가

말레이시아 페낭 출신으로, 1971년 장학금을 받고 MIT로 건너가 기계공학 학사·석사를 마쳤고 1979년 하버드에서 MBA를 받았습니다. GM과 펩시코를 거쳐 커모도어 인터내셔널 재무 담당 부사장을 지냈고, 이후 Integrated Circuit Systems CEO로 있다가 2006년 아바고(Avago)의 수장을 맡았습니다. 2015년 아바고가 370억 달러에 브로드컴을 인수하면서 지금의 사명을 그대로 가져가는 형태로 합병했는데, 실질적으로는 아바고가 브로드컴이라는 브랜드를 사서 덩치를 키운 거래였습니다. 이후로도 CA Technologies, 시만텍 기업보안 사업부, VMware까지 연달아 인수하며 "반도체업계의 M&A 장인"이라는 평판을 굳혔고, 지금은 메타 이사회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2023년엔 미국에서 세 번째로 많은 보수(1억6,180만 달러)를 받은 CEO였습니다.

"카지노" 발언의 실제 맥락

이번 발언은 막연한 경고가 아니라 구체적인 비유 두 개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하나는 방금 언급한 카지노 비유고, 다른 하나는 어릴 때 오락실 경험에 빗댄 말이었습니다.

"어릴 때 오락실에 가면, 부모님이 10달러어치 토큰을 주시죠. 그걸 10분 만에 다 써버리고 나면, 남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업들이 ROI(투자 대비 수익)를 제대로 따지지 않고 AI 모델 사용료(토큰 비용)를 쏟아붓는 모습이 딱 그 꼴이라는 겁니다. 그가 짚은 진짜 병목은 웨이퍼나 메모리 공급 부족이 아니라 **자본(capital)**이라는 점도 눈에 띕니다. 공급망 쪽 문제는 이제 어느 정도 풀리고 있는데, 투자자들이 "그래서 언제 돈을 버는데"라고 묻기 시작하면 그다음 단계에서 자금이 마르는 게 진짜 위기라는 진단입니다. 다만 그가 완전히 비관적인 건 아니었습니다. OpenAI의 9월 연환산 매출이 500억 달러를 기록한 걸 두고, 그는 "고무적인 신호"라고 짚었습니다. 이 수치를 둘러싼 반응은 사실 엇갈렸습니다. OpenAI가 투자자들에게 이전에 시사했던 수치는 700억 달러에 가까웠는데, 실제 집계가 그보다 200억 달러나 낮게 나오면서 엔비디아·오라클·코어위브 같은 AI 관련주가 일제히 급락하는 등 시장 대다수는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는 실망 섞인 반응을 보였습니다(이 격차는 상당 부분 앤트로픽과 계산 방식이 달랐던 데서 비롯됐다는 설명도 뒤이어 나왔습니다 — 앤트로픽은 AWS·구글클라우드 같은 파트너사를 통한 매출까지 합산하는 반면 OpenAI는 그렇지 않습니다). 혹 탄은 이런 부정적 해석과는 결이 다르게, "그래도 실제로 500억 달러어치 수요가 증명된 것 아니냐"는 쪽에 무게를 둔 셈입니다. 다만 그 매출 규모에 비해 모델을 계속 학습시키는 비용이 워낙 커서, 지속 가능한 수익성은 아직 별개의 문제라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정작 본인은 그 판에서 제일 많이 버는 사람이라는 점

이 발언이 화제가 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브로드컴은 앤트로픽에 칩 리스 자금으로 최대 420억 달러를 빌려주기로 한 회사이고, 혹 탄 본인은 2028년 AI 칩 매출이 지금의 두 배인 2,300억 달러로 뛸 거라고 전망하는 사람입니다. AI 투자 붐의 최대 수혜자 중 한 명이 "이거 도박판 같다"고 말한 셈이라, 일론 머스크가 곧바로 "카지노에서 울지 말라(No crying in the casino)"고 맞받아치기도 했습니다. 발언 직후 월요일 아시아 반도체주가 잠깐 흔들렸는데, 14일 현재는 다시 안정됐고 시장 관심은 연준 금리 쪽으로 넘어간 상태입니다.

"캐피털 쇼티지"라는 말이 왜 낯설지 않은가

혹 탄이 말한 자본 부족(capital shortage)은 사실 새로운 패턴이 아닙니다 — 수익성이 증명되기 전에 자본이 먼저 몰렸다가, 투자자들이 회의적으로 돌아서는 순간 자금이 빠르게 마르는 패턴은 과거에도 반복됐습니다.

2000년대 초 광통신망 붕괴는 "수요를 완전히 지어냈다"에 가까운 사례입니다. 월드콤이 "인터넷 트래픽이 100일마다 두 배로 늘어난다"고 공언하고 다녔는데, 실제 증가 속도는 1년에 두 배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증시가 "성장"이라면 뭐든 보상해주던 시절이라, 레벨3·퀘스트·글로벌 크로싱 같은 회사들이 그 과장된 숫자를 근거로 앞다퉈 미국 전역에 광케이블을 깔았습니다. 결과적으로 8천만 마일 넘는 광케이블이 깔렸는데, 버블이 꺼지고 4년이 지난 뒤에도 그중 85%가 아예 쓰이지도 않는 "다크 파이버(dark fiber)"로 남았습니다. 공급이 과잉되니 대역폭 가격은 90%나 폭락했고, 월드콤은 매출을 부풀리려고 회사 간 용량을 맞교환하는 수법까지 동원하다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회계 부정으로 적발됐습니다. 이 여파로 20개가 넘는 대형 통신사가 무너졌고, 업계 전체에 1조 달러 넘는 회수 불가능한 부채만 남았습니다.

2015~2016년 셰일가스 연쇄 파산은 거꾸로 "실제 수요는 있었지만 가격이 버텨주지 못한" 경우입니다. 유가가 배럴당 90~100달러를 넘나들던 시절, 셰일 업체들은 비용이 많이 드는 시추에 빚을 잔뜩 끌어다 썼습니다. 문제는 그 결과로 미국 생산량이 너무 급격히 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끄는 OPEC이 (셰일 업체들을 시장에서 몰아내려고) 감산을 거부하고, 핵 제재가 풀린 이란까지 시장에 복귀하면서 공급이 한꺼번에 쏟아졌습니다. 유가는 100달러대에서 35달러까지 주저앉았고, 한때는 멀쩡히 현금흐름을 낼 거라 예상했던 시추 프로젝트들이 더 이상 빚을 갚을 만큼의 돈을 못 벌면서, 2015년 한 해에만 미국 석유·가스 기업 67곳이 파산했습니다 — 전년 대비 379% 급증한 수치입니다.

2008년 이후 해운·조선업 불황은 타이밍이 꼬인 경우에 가깝습니다. 2008년 위기 이전 호황기에 선사들은 시장 점유율을 지키려고 배를 과잉 발주했는데, 마침 덴마크 해운사 머스크(Maersk, 일론 머스크와는 무관)의 초대형선(Triple E) 성공까지 겹치며 "더 큰 배를 더 많이"라는 유행이 번졌습니다. 한진해운도 2008년 11월 기준 보유·용선 선복량을 40.3% 늘리는 계약을 맺었는데, 하필 이게 금융위기 이후 시황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묶인 계약이었습니다. 정작 위기가 터지자 물동량은 쪼그라드는데 이미 발주한 배들은 계속 인도되면서 공급 과잉이 굳어졌고, 한때는 전 세계 컨테이너 선복의 5분의 1이 갈 곳 없이 정박해 있는 상태까지 갔습니다. 한진해운은 결국 2016년 파산했습니다.

혹 탄이 지금 AI 산업을 두고 경고하는 건 바로 이 광통신망·셰일가스·해운업 세 사례와 같은 유형입니다.

이걸 보면서 든 생각

한 가지 걸리는 건, 같은 사람이 위기를 경고하면서 동시에 그 위기의 한복판에 420억 달러를 베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둘 다 진심일 수 있다고 봅니다 — "전체 판이 과열됐다"는 진단과 "그래도 내가 공급하는 칩은 계속 팔린다"는 확신이 동시에 성립할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그가 경고한 대상도 "AI 전체"가 아니라 수익 모델 없이 기대감만으로 돈을 태우는 쪽이었지, 자기 회사가 서 있는 하드웨어·인프라 공급망 쪽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발언에서 건질 수 있는 건 "AI는 끝났다"가 아니라, 어떤 지출이 실제 현금흐름으로 이어지는 지출이고 어떤 지출이 오락실 토큰처럼 사라지는 지출인지를 구분해서 보라는 쪽에 가깝습니다. 광통신망 사례에서 85%가 끝내 "다크 파이버"로 남았던 것처럼, 지금 깔리고 있는 AI 데이터센터·GPU 중에서도 나중에 실제로 쓰이는 쪽과 그렇지 못한 쪽이 갈릴 거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참고 링크

이 글은 개인적인 시황 정리이며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